고대 대숲에 올라온 복학생 심경글
2년 간 군대에 처박혀있다가 이번에 복학을 했어요. 군대에 있을 땐 그렇게 나오고 싶던 사회였고 학교였거든요.
그런데 왜 이렇게 자존감이 떨어지고 갈 길을 잃은 것 같은 느낌이 들까요?
적응은 전혀 안되겠고 친구들도 별로 없고 예전에 친했던 얼굴들도 이젠 마주칠 때 데면데면 어색한 인사만 주고받아요.
제 동기 한명은 공황장애가 오는 것 같더라구요. 저도 그런 느낌이에요. 시선이 아득해지고 심장은 빨라지고 긴장은 심해져요.
오늘은요, 독강 후에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고 마땅히 갈 곳도 없어서 반실에 갔어요.
아무도 없길래 배달음식을 시켜서 혼자 먹어야겠다 하고 주문을 하자마자 17학번 새내기분들이 우루루 들어오더라구요.
그 사이에서 정말 어색하게 우걱우걱 음식을 집어넣는데 이게 진짜 코로 들어가는지 귀로 들어가는지 넋이 나가고 속도 체할 것 같더라구요.
수업이 일찍 끝나서 마땅히 갈 곳이 없어 또 반실을 가보면 모르는 후배님들만 한가득 앉아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왜 이렇게 소외감이 들고 스스로가 초라해 보이던지요.
그저 페북만 주구장창, 새로 고침을 해도 새로운 게 뜨지 않을 정도로 읽고 또 읽고…
왠지 마음이 죄지은 것 같은 기분이고 내가 여기 이렇게 있어도 되는지… 한없이 내 자신이 작아지는 시간이었어요.
쇼생크 탈출에 나오는 모건 프리먼이, 40년 만에 모범수로 출소해서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했을 때 이런 감정일까요?
나만 이 사회에서 외떨어진 기분.. 그나마 저는 죄 짓고 나온 것도 아닌데..
저도 이래뵈도 예전엔 꽤 대학생활 멋지게 했어요.
동아리에서 같이 기숙사 공연도 했구요, 민광에서 버스킹도 하면서 박수도 받았구요, 새내기 때 밤을 새가며 옛 동기들과 시험 공부를 같이 하고요,
새내기 장기자랑 한다고 걸스데이 안무를 레깅스 치마를 입고 한참을 연습도 했었구요, 사표 글 쓴다고 공강 시간에 날림으로 뚝딱 페이퍼 찍어내기도 해 봤구요,
반실에 술 한병 들고 가면 같이 신나게 마셔줄 사람들도 있었구요, 반 대표도 하면서 온갖 고생도 해봤구요,
응티나 고연전이나 갔다만 하면 모르는 사람하고도 그날 하루는 베프가 되어서 허리가 부러져라 신나게 응원도 했었구요,
기차놀이 하면서 화장품 가게에서 샘플 받아내곤 다 같이 폭소도 했구요, 수많은 날들을 안암의 밤거리를 휘적이며 그 공기에 취했던 평범한 학생이었어요.
제게 바뀐 건 지옥에서 탈출했다는 전역증 하나와 나이 두 개 인데 왜 돌아온 세상은 모든 것이 바뀌어 있을까요? 저를 거부라도 하듯이… 참 우울한 밤이네요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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